2012년 10월, 일선문고가 부도를 맞았고 같은자리에 12월 우리문고가 오픈한다.
11월부터 본격 시작된 우리문고 오픈, 창립멤버로 활약해온지 200일이 되는 시점,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문고는 “문화가 있는 서점”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기존 책만 판매하던 서점에서 나아가 서점에 와야 할 이유를 여러가지로 늘려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며 오픈했다. 이를 위해 옥외 정원, 세미나 및 전시장 공간, 문구팬시 공간, 카페 공간 등 다양한 여가거리를 준비하였고 이에 맞는 컨텐츠를 도입하여 고객만족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신규 인프라가 증가한 만큼 책을 위한 공간을 상당수 빼았겼는데, 이에 따른 이견도 상당했다. 첫째로 컨텐츠 운영을 위한 인력을 채용함에 있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였으나 컨텐츠 운영으로 인한 당장의 수익이 없다는 점. 빼앗긴 공간 만큼 도서가 줄어들고 이는 서점 매출 하락으로 본격 이어지는 이중고가 함께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대반 걱정반, 서점은 오픈하였다.
■ 브랜드 아이덴티티티
오픈을 3주 앞두고 서점 이름만 정해져있는 상황, 두명의 스페셜리스트를 간곡하게 찾았다. 한명은 서점내 페인팅을 맡아줄 김현묵 작가. 다른 한명은 C.I, 간판 등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맡아줄 박세진 디자이너였다. 김현묵 작가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갖 돌아온 상황덕에 시간을 만들 수 있었고, 박세진 디자이너 역시 바쁜 와중에 시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매일같이 기획하고 실무작업으로 이어져 확인하는 등 기획 제작 교정 확인의 끊임없는 반복이 계속되었다. 약 2주 동안 50여개 이상의 디자인 결과물이 생성되었고 오픈에 필요한 대부분의 시각 아이덴티티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벤치마킹을 통한 문인의 초상 벽화, 그리고 아동 코너의 초대형 벽화를 맡아준 김현묵군 역시 한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해준 덕에 완성도 높은 서점의 볼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귀찮게 부탁했던 시절인것 같고, 꽤나 다이나믹하게 대응해줬던 시간들이었다.
■ 디자인
비용문제를 이유로 어느순간부터 직접 만들어야만 했는데, 서가 및 매대의 간판, 리플렛 등 고급 인쇄물을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인쇄에 대해 학습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얻어 좋았다. 특히 3단 리플렛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반응도 좋았다. 매달 1회씩 교체했던 옥외 현수막은 처음에 큰 부담으로 자리잡았지만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기술이 향상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된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 전시공간 ‘아뜰리에’
신용일, A Calm Soul
김현묵, 기억에 의지한 이미지
우기곤, 내안에 있는 너
김영봉, Another Me
이승진, 삶은 달걀이다
한희준, The Time
이재복, 갖고 싶은 사진
우리안, 첫나들이전
마은혜, 언제나 봄, 누구나 꽃
f-dabang, 기억이 많은 무심천
아뜰리에의 이름이 적당한지 아직도 고개가 갸우뚱하다. 급하게 일이 진척되던 시절, 칸트챠트를 칠판에 크게 만들어놓고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최종 몇개의 아이디어중 하나였던 아뜰리에를 선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업실의 의미가 강하긴하지만 그럭저럭 어색하지 않게 사용중인 이름이다. 이 공간에서 총 10번의 전시가 진행되었고, 그 중 8번의 개인전이 진행되었다. 15평 규모의 아담한 사이즈가 만든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사진가 네트워크가 대부분이었던 내가 운영하던 공간인만큼 대부분은 사진전시였고, 갖기 힘들었던 개인전의 문턱을 낮춰줬다는 것에 의의를, 그리고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지역 사진가들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큐레이션들이 몇차례 있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전시공부의 기회를 제공했던 공간이다. 오픈이후 일부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동안 전시공간을 비우지 않고 1-2주 단위로 꾸준히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무엇보다 초저예산 운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구체화 시켰다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
■ 저자와의 만남
청주시립정보도서관에 들러 우연히 알게된 향토작가 리스트를 통해 김선영 작가를 알게 되었고, 출판사를 통해 어렵사리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운좋게 신간이 2013년 1월 출간되어 우리문고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시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블로그와 SNS, 온오프믹스를 통한 웹마케팅과 저자의 지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오프라인 마케팅이 적절히 어울러져 참여인원 60명에 이르는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2월 9일 행사가 있었던 아뜰리에는 이산화탄소로 가득차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요즘 같으면 더워서 참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문화적으로 경험이 적고, 관심도 적은 메마른 청주에서 만난 첫번째 가능성이었다.
■ 인문학 강의
조월례, 우리아이 왜 책을 읽어야 하나?
강창래, 당신의 달콤한 독서를 위하여
이재복, 서점에 견학온 갈원초
서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습판매가 절대적인 판매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큰 틀에서 봤을 때 엔터테이먼트 등 실용 서적의 판매비중이 압도적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서점의 생명을 문사철에 두고 이에 관심을 넓히기 위해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광화문의 푸른역사 아카데미를 찾았을 때 인문학 강의는 10명만 모여도 대박이라는 표현을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극단적으로 모객 2명도 경험했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함께하기 어려운게 인문학 강좌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 소그룹모임
책 읽기 모임 책실험실을 결성해 책읽기 습관을 키워보고자 하였다. 특히 인문 장르를 읽기 위해 노력했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한줄읽기’ 방법을 이용했다. 읽기 어려운 성경을 1-2구절씩 인용해 설교하는 교회의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왔다. 생활사진을 배울 수 있는 포토클래스도 개설하여 진행하였고, 2명으로 시작해 5명까지 참여자가 생겨나는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서점에서 서점을 배우다
고흥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대전 계룡문고
부산 영광도서
부산 책과아이들
인천 아벨서점
서울 길담서원
청주 홍문당
청주 서당
충주 책이있는글터
사실 위에 나열된 서점 외에도 책이있는 공간이 눈에 띄면 언제든, 몇번이고 다시 찾곤 했다. 서점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그 어떤것이든 벤치마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서점은 아직도 찾아가 분석할만큼 배울점이 많은 서점들이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건 많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 공간이기도 했다.
■ 아쉬움, 죄송한 마음
행사 몇일 전, 철당간 광장의 노래자랑과 일정이 겹쳐 최종 취소된 김용택 시인과의 만남. 처음 행사연기는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최종 행사취소는 내 입장에서 대단한 실례일 수 밖에 없었다. 시행착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잘못이 컸다. 고흥에까지 찾아가 행사를 부탁드렸던 최종규 작가와의 만남도 역시 큰 실례였다. 회사가 기대수익을 바라보며 비용지출에 소극적이었던 태도에 너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후 몇차례 인문학 강좌에 있어서도 기대수익과 모객의 어려움을 이유로 완벽하게 대응해드리 못한 점들에 아쉬움을 남겨본다.
■ 향후, 우리문고
2013년 6월, 전시 강의 등 컨텐츠 프로그램이 대거 축소된다. 서점운영에 필요한 기본 자원을 강화하겠다는 경영방침에 따른 것이고, 이로 인해 업무분장 재배치등 구조조정이 완료된 상태이다.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매출을 일으키겠다는 특단의 조치로 판단되어지고 이후 문화 컨텐츠를 통해 시너지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이로서 급하다면 급하게 달려온 <문화가 있는 서점> 의 이야기는 일단락 짓는 셈이다. 이제 겨우 전시라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고객들에게 찬물을 껴얻는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언젠가 재개될 서점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예술라는 것이 의식주 등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이 해결된 상태에서 약간의 잉여력 속에 존재 가능하다고 바라볼 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큰 아쉬움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