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서점이 나아갈 방향, 그리고 우리문고
분류: 책공간
이름: 이재복 * http://holyn.net
등록일: 2012-12-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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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을 마지막으로 40여년간의 여정을 마친 일선문고
2012년 10월, 내가 태어나고 20여년 자라왔던 고향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일선문고가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청주에 가장 중심인 성안길에 위치한 일선문고가 부도라니..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에서 확인한 결과 경영난으로 부도처리 되었다는데.. 실제를 알 수는 없지만 어려웠던 부분이 많았던 것에는 틀림 없는듯 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서점의 급 부상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대 위기가 찾아왔고 꽤 많은 서점이 부도처리되어 지금 전국적으로 서점은 2,000여개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들어 인터넷 서점도 어렵다는 이야기, 더불어 대교 리브로가 문을 닫는다는 기사도 나왔고 E-BOOK 등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는 상황을 보았을 때 오프라인 서점인 일선문고의 부도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책이 모두 빠져나간 일선문고의 빈 서가
지난 11월 1일, 이병길 사장님을 처음 뵈었다.
청주로 이사온 뒤, 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새로운 서점이 생긴다는 채용공고에 호기심을 가졌고 밝걸음을 옮겨 채용공고에 적혀있는 주소지를 따라 찾아가보니 그곳은 지난 일선문고가 영업했던 그 자리. 누군가 이 자리에서 새로운 서점을 구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번의 면접을 통해 채용이 확정되었는데 면접 과정은 그간 치뤄왔던 다른 회사의 면접과는 조금 달랐다. 사장님과 면접자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호 면접 방식이 그 첫번째 차이점이고, 두번째로 “숙제”가 있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해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 그리고 관련된 일을 얼마나 추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요지는 단순했다. 서점의 방향에 대한 설명 이해와 왜 부도난 자리에서 또 같은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들이었다. 면접 마지막 “고객이란?” 사장님의 질문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는 후원자”라는 나의 답변이 사장님에게 나쁘지 않게 보였나보다.
사장님의 첫 인상은 “돈 때문은 아니다라는 것”, “확실한 무언가를 미리 본 사람” 정도로 인식되었다.
사장님의 존재는 아직도 베일속의 인물이다. 그저 양파껍질같은 스타일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확신하며 서점에서의 일은 시작되었다.
2012년 12월 15일. 우리문고가 탄생.
11월 14일 첫출근을 하였고, 오픈하던 12월 15일까지 딱 한달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역량의 총동원”. 그간의 소소한 경험까지 다 기억해내며 역량을 총 동원해야 했다. 알고 있던 의미 있는 모든 관계를 다 동원해 협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만큼 서점의 아이텐티티를 정리하고 표현해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장님의 까다로운 기준도 한 몫 제대로 했다. 불가능 같았던 시간들이 모두 거쳐가고 어제 대망의 오픈까지. 커피한잔 마실 여유조차 없이 숨막히게 달려왔다.
우리문고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Brand Identity
11월 20일 우리문고는 겨우 이름이 정해졌던 상황이고, 시각 작업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빠르게 B.I를 구축해줄 전문 디자이너를 섭외했고, 가능한 최대한의 표현을 담아 디자인 발주를 넣었다.
그렇게 몇번 오가며 확정한 우리문고의 캐릭터와 로고. 작업 기간을 생각하면 훌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소책자로 한권정도 분량의 BI 시각자료를 확보한 상태이다. 이런 것들 홀로 진행한 일은 아니지만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입장에서 꽤 뿌듯한 일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서점 내부 계단에 “문인의 초상”을 그리는 모습
회사 BI에서 적혀있듯 “문화가 있는 서점”이 슬로건이다. 도데체 문화가 무엇이길래?
사전을 찾아보았다.
우리문고가 이야기하는 문화는 무엇인가?
서점에 방문하는 고객은 책을 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서점에서 고객이 방문해야할 다른 이유를 만들어 준다면?
3층 건물의 우리문고에 1층 북카페를, 2층 팬시점, 3층 세미나/갤러리 , 옥상에 콘서트 공간을 계획했고, 실제로 완성시켰다. 이런 결과로 우리문고는 더 이상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커피, 팬시, 예술, 음악, 강좌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상황을 충족시키기 위해 멀티 공간으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세부적으로 꽤 다양한 노하우가 필요했다. 거기에 이를 운영할 행사기획과 인원동원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 확보 등은 우리문고에 남겨진 과제이다.
우리문고 기획초청전시회 OPEN.
12월 15일, 우리문고 오픈과 함께 신용일 화백 초청전도 오픈했다
이 자리는 책을 판매하던 곳이었고 이는 시민들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책의 선택과 결제 등 예상되었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시는 시민들에게 아직도 낯선 일들인듯 했다. 전시장 문 앞에서 “들어가도 되요?” 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며 조금 낙담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이런 이야기를 하며 일과를 마쳤다.
“그간 시민들이 전시장 대문을 지나쳤던 상황이라면 이제 겨우 전시장 입구 앞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확충된 인프라와 그것에 따른 컨텐츠를 보급하는 것이 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조차 꾸려나가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라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문고는 서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문화운동을 일으키는 지역공동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기 원한다. 이것이 사장님의 생각이고, 우리는 이것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실현시켜나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경험과 아이디어가 집약되어야 완성도있는 체제로 구축시킬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겁나지 않는다. 앞으로 닥칠 경험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소중한 자료가 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시대의 모든 결정에 최우선은 비용절감이다. 이런 논리는 교육에까지 확산되어 교과서가 디스플레이로 옮겨가기 직전에까지 와있다. 책은 물론 예술 등 문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은 그런 비용절감에 대표적인 희생량이 되고 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위해 이유없이 활동했던 그 시대 젊은이처럼 지금은 문화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문고는 어떠한 이유로든 문화운동에 앞장설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법이기 때문이다.
문화(文化)
인간에게만 있는 생각과 행동 방식 중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배우고 전달받은 모든 것들. 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등을 모두 포함한다. 문화(culture)의 어원은 라틴어의 ‘Cultus’에서 유래. ‘재배하다’, ‘경작하다’, ‘마음을 돌보다’, ‘지적인 개발을 하다’ 등의 뜻이 있다.